한국 원전 수출 위기: 한전과 자회사 간 갈등 격화

한국의 원전 산업이 최근 체코에서 24조 원(17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지만, 내부 갈등이 국제 중재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갈등의 상대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아니라 한국전력공사(KEPCO)와 그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KHNP)이다. 2001년 KHNP가 한전에서 분리된 이후, 양사는 원전 수출과 관련해 명확한 역할 분담 없이 운영돼 왔으며, 이 문제가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오래된 갈등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의 추가 비용 조정 문제로 다시 불거졌다. 총 1조 원(6억9700만 달러)이 넘는 이 사업에서 KHNP는 원자로 시운전을 담당했지만, 예상보다 증가한 건설 비용을 두고 한전과 갈등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고위 관계자들이 한전과 KHNP를 이끌면서 내부 충돌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역할 불명확성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은 2001년 KHNP가 한전에서 분리된 이후 명확한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데 있다. 당시 정부는 한전의 독점을 해체하기 위해 KHNP를 별도 법인으로 설립했지만, 해외 원전 수출과 관련된 업무 분장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임시 조치로 동유럽 시장은 KHNP가, 서유럽과 중동 시장은 한전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2009년 한전이 UAE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을 20조 원(139억 달러)에 수주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지난해 9월 바라카 원전의 마지막 4호기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완료됐지만, 공사 비용이 1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여파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KHNP는 추가 비용을 한전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전은 200조 원(1395억 달러)이 넘는 부채를 감당하는 상황에서 UAE 측으로부터 추가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공공연한 갈등으로 번진 한전과 KHNP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협상을 시도했으나, 지난 2월 19일 김동철 한전 사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KHNP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다시 격화됐다. 이에 KHNP는 런던 국제중재재판소(LCIA)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갈등의 핵심은 원전 수출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다. 한전은 해외 계약을 따내는 능력을 강조하는 반면, KHNP는 원전 기술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면, 체코 원전 프로젝트에서도 추가 비용 문제로 비슷한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